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존 템플 (문단 편집) == 평가 == 파머스턴은 미숙한 인간 관계나 몇몇 정책상의 이견 등으로 [[빅토리아 여왕]]과 그 당시 대부분의 정치인들로부터 불신을 받았으나, 대중과 언론의 높은 지지를 유지하는데 능해 그들로부턴 '팜(Pam)'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듣기도 했다. 데이비드 브라운은 “파머스턴이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점으로는 그의 역동력과 열의가 있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구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 I hold that the real policy of England... is to be the champion of justice and right, pursuing that course with moderation and prudence, not becoming the Quixote of the world, but giving the weight of her moral sanction and support wherever she thinks that justice is, and whenever she thinks that wrong has been done. (...) Therefore I say that it is a narrow policy to suppose that this country or that is to be marked out as the eternal ally or the perpetual enemy of England.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사실 이 연설에 담긴 내용이 바로 영국이라는 국가의 근본적인 외교 정책이었다. 영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동맹국과 적국을 수시로 바꿨다.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최대의 적국이었던 프랑스를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는 동맹국으로 대했고, 반면 프랑스의 침공을 받은 스페인을 돕기 위해 군대까지 보냈으나 프랑스를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시키고 나자 영국은 곧바로 대 스페인 정책을 바꾸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지역의 독립을 돕기 위해 현지에 영국군 퇴역 장교와 병사들을 용병으로 보내어 중남미 독립군을 돕고 스페인 군대에 맞서 싸우게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페인 정부가 영국에 항의했으나 영국은 개의치 않았고, 결국 1820년대에 이르러 중남미 식민지들이 대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스페인은 국력에 큰 타격을 받고 더 이상 영국을 위협할 힘을 잃게 되었다.][* 이 말은 훗날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주어를 미국으로 바꿔서 쓰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헨리다.]라는 연설로 나타나는 그의 대외관은, 모순적이지만 자유적 간섭주의라는 말마따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내포했다. 그는 [[자유무역]]의 신봉자였고, 쇄국 정책(or 보호무역)을 행하는 나라(ex:청나라)에 대해선 무력을 통해서라도 강제 개방을 시켜 국제적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그 방법론이라는 게 [[포함외교]]나 [[아편전쟁]]처럼 당시에도, 오늘날까지도 비판받는 부도덕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에서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특히 [[제2차 아편전쟁]]의 경우는 당대 영국인들의 시각에서도 지나치게 정당성이 없고 추악한 전쟁이어서 하원에서 관련 안건이 부결될 정도였는데, '''하원을 해산시키고 침략 전쟁을 강행한''' 케이스라서 뭇사람들에게 굉장히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파머스턴 사후 글래드스턴 재임기 반제국주의, 평화주의 노선이 돋보인 자유당을 생각하면 더 아이러니한 부분. 그러나 또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그가 큰 위기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점, 세력 균형을 이루고자 한 그의 헌신[* 그는 많은 충돌에 있어서 [[영국]]에게 결정적인 중개역을 마련해주었다.], 뛰어난 분석 능력, 영국의 이해관계에 전념한 점 등을 들어, 헨리 존 템플을 '영국에서 가장 위대했던 외무장관 중 한 명'으로 꼽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평한다. 내치에서도 1차 선거법 개정으로 유권자를 도시 중산층으로 확대하고[* 다만 선거권을 노동자층까지 급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당시 사회문제였던 아동노동을 청소년 야간노동 금지법을 통해 완화시켰으며 가톨릭 차별 금지, 전국민 예방접종 의무화 등 여러 업적을 남겼다. [[인도]], [[청나라]],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제국|스페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의 정책은 [[영국]]에게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될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제국|프랑스]], [[오스만 제국]],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이와 비교했을 때 더 한시적인 결과만을 보여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각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